불과 십 여년 전까지, 결혼하는 것은 대학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대학은 누구나 다닌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나, 실제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가 채 안 된다!
결혼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기간도 정해져 있었다. 서른 살을 넘기기 전에 결혼을 하려고 서둘렀다. 스물 여덟 아홉 무렵이면 청첩장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차츰 결혼하는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2005년 이후, 여자는 2015년 이후 평균 결혼 연령이 서른 살이 넘었다. 서울 지역만 보면, 남자는 2002년 이후, 여자는 2011년 이후부터 평균 결혼 연령이 서른 살이 넘었다.
결혼을 늦게 할뿐더러, 결혼하는 커플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2017년도에 결혼한 커플의 수는 21만 쌍이었다.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다. '결혼하는 사람이 적구나' 라고 보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데, 미혼 비율로 보면 좀 더 와 닿는다.
과거에는 서둘러 결혼했던 29세까지의 미혼율이 무려 92%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는 사람이 고작 8% 밖에 안 되는 것이다. 30대의 미혼율도 약 40%이다. 30대라도 둘 중의 한 명 정도 결혼한 꼴이다. 40대 이후에도 미혼율이 약 25%라서 넷 중 하나는 미혼이다. 이제는 3~40대 사람들에게 당연한 듯 "결혼 하셨죠?" 라고 묻기 조심스럽다.
왜 결혼을 못했을까?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 선배들 가운데 결혼을 하신 분들이 많다 보니, 요즘에는 30대에도 둘 중 하나가 미혼이라고 하면 '경제 문제'로 해석하시는 경우도 잦다.
옛날(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에는 대학 졸업만 하면 취업되고,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몇 년 모으면 집도 살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취업도 잘 안 되고, 혼자 벌어서는 택도 없으니 돈 때문에 결혼을 못 한다며 측은히 여기신다.
언제인지 모를 옛날에는 정말 살기가 편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많은 분들이 "결혼할 때는 돈이 없어서.." "결혼할 무렵에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내가 고생 많이 했다." "결혼할 때 돈이 없어서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같은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그 때에도 돈이 여유로워 결혼을 하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 나름의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결혼은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은 예전처럼 어려움이 있어도 결혼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닐까?
결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보건복지부에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조사한 결과, 결혼 생각이 없다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남성의 경우, 결혼생활 비용 부담이 뒤를 이었고, 다음으로 상대에게 구속되고 싶지 않다는 답을 했다. 여성의 경우, 기대치에 맞는 사람이 없고, 상대에게 구속되고 싶지 않고, 내 일에 충실하고 싶다는 답이 뒤를 이었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돈 없음, 결혼상대 없음 등이 나오나, '결혼 생각 없음'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을 안한 이유' 외에, 결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심드렁한 태도가 더 또렷히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약 60% 가량이고,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사람이 33%이다. 여자의 경우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약 40%이고,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사람이 50%가 넘는다. 그나마 출산율이나 국가의 미래 등을 생각하면, 결혼 안 하겠다는 비혼주의자 비율이 낮은 게 다행이라 해야 하려나.
결혼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왜?
십 수 년 전만 해도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미션이었는데, 어쩌다 결혼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 되었을까?
사회적으로 미혼이 겪는 불이익과 불편함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1인분을 팔지 않아 혼자서는 맛있는 것을 먹기 어려웠고, 마트에서도 4인 가족 기준 포장이 대부분이라 혼자 사는 사람들은 불편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 혼밥 혼술에 최적화된 식당까지 있고, 어지간한 음식점에서는 1인분을 주문해도 문제없다.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아이디어 상품이나 소 용량 제품들이 넘쳐난다. 1인용 밥솥, 쬐그만 세탁기, 작은 냉장고 등 없는 게 없다.
무엇보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혼자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
2010년과 2016년의 여가생활 취미/오락 활동의 종류를 보면, 2016년의 그래프는 항목이 너무 많아 어지러울 정도다.
이와 같은 취미생활을 즐기려면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있는데, 시간, 돈, 마음의 여유다. 솔로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취미활동을 같이 한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꿈을 꾸기는 하나, 솔로일 때 시간, 돈, 마음의 여유가 더 많아 취미생활을 즐기기에 유리하다.
취미생활과 결혼생활을 거칠게 비교하자면, 취미생활은 통제욕구와 성취 욕구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채워준다. 통제욕구는 상황이나 사물, 사람 등을 자신의 예상 범위 내에서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 하는 것을 그대로 한다거나, 상황이 자신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편안하다. 성취욕구는 무언가를 이뤄내고자 하는 것이다. 결과로서 심리적 만족감이 크다거나, 자격증이 주어진다거나, 전문지식, 경력이 쌓였다거나 하는 무언가 남는 것을 바란다.
취미생활은 내 예산 범위에서 내 시간 될 때 하는 것이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통제가 어렵지도 않다. 시간과 돈이 안 되면 그만 하면 되므로. 악기든 운동이든 좀 하면 뭔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욕구도 크다. 반면 결혼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기에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제는커녕, 휘둘리기 일쑤다. 연애와 결혼을 잘 하고 있을 때 그 속에서 궁극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으나, 결별 시에는 궁극의 지옥도 맛 볼 수 있고,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듯한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도 성취도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궁극의 행복감’이 달콤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연애 및 결혼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다만, 보다 쉽고 빠르게 통제욕구, 성취 욕구를 달래주는 일들이 많아졌기에 결혼에 대한 도전 의지가 희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최민정 작가
" 연애 칼럼니스트 겸 데이터 해석자. 성균관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을 읽히고자 심리학을 시작했으나, 독심술 대신 데이터 읽는 법을 익혔다. 최근에는 데이터 속에 숨은 보물을 더 잘 읽기 위해 정보통계학과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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